도대체 이 책을 왜 읽으려고 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평소에 소설도 아니고, 평상시에 그다지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분야도 아닌 논픽션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턴가 산 책 목록에 이 책이 올라와 있는 겁니다. 왜 이 책을 샀을까, 이 책 내용은 뭘까 갑자기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책 표지가 뭔가 이목을 끌었습니다. 하얀 바탕에 파란색 글씨. 굉장히 간단하면서도 뭔가 대단한 내용을 담고 있을 것 같고, 자신감에 넘쳐 보이는 표지랄까요. 그 어떤 요란한 제목이나 현란한 사진과 그림보다도 더 임팩트 있게 다가오는 표지였습니다.
간결하면서도 깔끔하고 정갈하고 뭔가 전문성도 있어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이 책을 언젠가는 꼭 읽어야지 하면서 이북에 담아가지고 다닌지는 오래 됐습니다. 그러던 책을 마침내 읽게 된 건,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였습니다.
본래 별 뜻은 없었는데, 주변의 권유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는 과정을 작년부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 과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한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됐습니다. 사회복지사라는 것이 결국 돌보는 일을 하는 것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볼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언제 샀나 또 기록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2021년이네요. 그 즈음이 아버지가 아프셔서 응급실에 가셨다가 중환자들에 가셨다가, 병원에 장기 입원을 하게 되셨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아버지를 돌보는 일에 대한 고민들도 있어서 이 책이 눈에 들어와서 사뒀지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면서 이 책을 읽어야 될 때가 되었다고 느끼게 돼서 읽었습니다.
227쪽이라는 그다지 두껍지 않은 책이라서, 뭔가 쉽게 읽힐 거라는 바보 같은 생각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논픽션 종류가 픽션에 비해서 빠르게 읽히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해도 이 책은 읽는 데에 많이 오래 걸렸습니다. 뭔가 쉬운 듯하면서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난이도 자체가 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작가가 의사십니다. 근데 그냥 의사가 아닙니다. 1941년생이신 의사인데, 정신과 의사이기도 하면서, 인류학적으로 의학을 접근하였기에 인류학자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의사인 만치, 인류학 중에서도 의료 서비스를 받는 환자의 치료와 돌봄의 분야에 대해서 환자 입장에서 공부하신 분입니다.
미국의 의사이자 이 분야의 저명한 학자인데, 미국 내에서만 연구한 게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환자까지 아우르는 연구를 한 분입니다. 그런 분의 아내가 치매에 걸렸습니다. 그 아내의 병수발을 한 10년의 기록인 겁니다.
단순히 이 영어책 제목, ‘The Soul of Care’만 보고, ‘돌봄의 정신’이라고 제목을 이해하고 ‘잘 돌본다는 것을 뭘까, 환자나 불편하신 분들을 돌보는 정신 자세가 어때야 되나?’라는 생각으로 책을 펼친 순간, 펼쳐진 책의 내용은 예상과 같은 부분도 있었고 좀 다른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이 책은 작가가 만연체로 써 내려가서, 문장이 상당히 깁니다. 평소에 긴 문장 읽는 훈련이 돼 있지 않다면 힘듭니다. 만약, 수식어구를 한국식으로 이해하려고 뒤에서부터 다시 읽어내는 습관까지 있으시다면 이 책은 정말 어려운 책일 겁니다. 그러나, 챕터의 내용이 아내를 돌보는 일상적인 이야기가 주로 나올 때는 단어도 쉽고 문장만 길지 많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작가가 의사인만큼 의학 연구를 한 이야기며, 병리학적인 이야기 나오면 갑자기 나오는 단어마다 다 찾아야 하고, 찾아도 무슨 병인지 헷갈리면서 많이 어려워집니다. 이런 부분은 좀 천천히 읽으면 괜찮을 겁니다. 특별히 작가가 잘난 체하려고 하거나, 의학적인 가르침을 주려고 쓴 책이 아닙니다.
자신의 경험담을 쓰면서, 자신의 소신과 주장을 하는 책이기 때문에 쉽게 쓰여진 책입니다. 다만, 작가의 관록과 경험과 학문적 깊이 때문에 책은 상당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단어를 좀 어렵고 수준 있게 쓰거든요. 그래서 초급이신 분들이 읽으신다면 절대 비추천입니다. 어느 정도 책을 좀 읽어서 만연체도 읽을 수 있는 분들이 읽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의 구성은 프롤로그와 11개의 챕터, 그리고 에필로그로 돼 있습니다. 챕터의 길이는 딱 일관되지 않고 길었다가 짧았다가 하는 편입니다. 중간에 끊어 읽을 만한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한 챕터 단위로 읽는 것이 내용이 더 잘 들어오는 편입니다.
문장이 길이가 좀 있고, 단어도 어려워서 읽다가 끊어 읽은 챕터를 앞부분부터 다시 읽은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용이 명확하게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한 챕터 단위로 시간 내서 조용히 읽으실 수 있다면 더 재미나게 읽으실 수 있는 책입니다.
짜투리 시간 투자용이라기 보다는 집중해서 읽으실 만한 책이라고 봅니다. 철학적이거나 어려운 것 없이 가벼운 듯 하면서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라 그렇습니다.
책 내용은 10년 동안 치매 아내를 돌본 이야기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책의 상당 부분이 그 내용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채워졌다기보다는 아내를 만나서 결혼하고 살아온 이야기들도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자신이 온 생애를 던져서 일해온 정신과의학과, 돌봄과 돌봄을 주는 것의 인류학적인 연구와, 그 연구를 뒷받침해 오면서 중국 시를 번역하던 아내의 연구까지 이야기는 폭넓게 진행됩니다. 유능하고 직설적이고 다른 이들과 화합하는 데에 서툴렀던 작가에게, 아내는 중간에 사회적으로 잘 융합될 수 있도록 완충제와 설득자 및 화합을 도모하는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까지 확장해서 연구해 나가면서도 많은 이들의 협력을 구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그토록 뒤에서, 혹은 앞에서 애나 어른이나 남편이나 동료 학자들이나 따지지 않고 모두를 care(돌봄)을 해 주었던 아내 Joan은 조발성 치매가 오고 맙니다.
50대말 즈음에 온 치매는 처음에는 컴퓨터 화면이 잘 안 보이는 것으로 시작하고, 그 원인을 모르다가 결국 여러 차례 병원을 옮기면서 같은 검사와 문진을 계속 하다가 결국 밝혀집니다. 그리고 그 아내를 돌보는 10년 간의 여정이 펼쳐지는 겁니다.
초기에는 아내도 연구하던 것을 계속 하고, 작가도 직장과 그 동료들이 편의를 봐 줘서 아내를 직장에 데리고 다니면서 같이 연구를 합니다. 그러나, 아내의 질환이 심해지면서 결국 집에 아내를 두고 가면서 집에서 낮에 돌봐주는 사람을 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죽기 9개월 전에는 요양병원에 입소시키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아내의 질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더 나빠져서 다시 새롭게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를 서로 익혀나가야 하는 과정을 여러번 반복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요양병원에 아내를 맡길 때는, 이미 병원에서는 너무 오랜 동안 집에서 돌봤다고 하지만, 너무 일찍 아내를 포기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요양병원과 같은 시설도 크지 않아도 시설장의 철학에 따라서 모두 헌신적으로 돌보는 의료진과 요양보호사와 도우미들이 있는 경우에는 큰 시설보다 환자들이 더 행복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동네의 작지만 그런 곳에 아내를 맡겼다가, 나중에는 더 전문적이면서도 헌신적인 큰 병원에서 옮겼고, 아내의 뜻대로 생의 마지막 순가에 와서는, 마약성 진통제를 놔서 고통을 덜 느끼면서 인간적으로 무너지지 않은 상태로 저 세상에 가도록 해 줍니다.
작가는 마무리 하면서, 이 책을 쓰도록 격려해 준 사람들과, 이 책을 잘 만들게 해 준 사람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하고, 이 책에 돈을 투자해 준 기관에도 감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care(돌봄)과 caregiving(돌봄을 줌)은 인류학에서 가장 중심에 서야 하고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기주의나 자기 중심적임, 혹은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것이 우선시 돼야 할 것처럼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care와 caregiving이 우리의 삶과 사회에서 필수적이고 가장 중심에 설 때, 우리는 다툼도 줄고, 인류가 더 성장할 힘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감동적이 이 책은, 한글책으로 번역이 돼 있습니다. 저도 영어로 읽으면서 부분적으로는 쉽고 부분적으로는 너무 어려웠던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어 힘드시면 한글책으로 즐기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글이든 영어든 고령화 시대의 돌봄에 대해서 생각할 꺼리는 주는 굉장히 전문적인 책이었습니다. 전문가가 쉽게 쓰려고 했지만, 전문적이고 박식해서 쉽지 않게 쓰여진 책이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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