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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소설(non-fiction)

[서평] The Selfish Gene by Richard Dawkins

by 글대장장이 서야 2023. 10. 11.

대학 다닐 때 주변에서 이 책, ‘Selfish Gene’의 한글판인 ‘이기적 유전자’를 읽는 친구들이 심심치 않게 있었습니다마는, 그때는 공부를 열심히 안 할 때라서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다 2015년의 어느 날 이 책을 무려 북클럽식이나 열어서 읽었을 무렵에는, 우울증 충만한 때여서 뭔가 이런 책으로 지적 허영을 맘껏 부려봐야 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그 많은 세월 안 읽고 버티다가 드디어 이 책을 읽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북클럽을 하기로 한 책의 정해진 분량을 읽고 기록을 정해진 날짜에 맞춰서 써 본 책 중에서, 재미나면서도 이렇게 읽은 기록을 하기 힘든 책은 정말 처음인 것 같습니다.  보통은 재미 없어서 힘들거나, 재밌어서 신나게 달리듯이 읽기 마련이니까요. 

원서 표지입니다. 판형에 따라서 표지가 다양합니다.

이 책의 서평을 찾아보다가 들어간 어떤 블로그에서(어딘지는 모르겠어요. 마구잡이로 인터넷 검색해서 걸려들어서 읽어봤어요. 제대로 다 읽은 건 아니고 듬성 듬성 읽었어요. 너무 자세히 읽으면 스포일러 잖아요.), 이 책이 가볍게 읽히더라는 이야기를 읽었는데, 그 사람은 아무래도 북클럽으로 읽지 않은 게 틀림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문부터 읽어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때는, 1976년 1월 1일이라고, 세계 최대 서평 사이트라고 일컬어지는 굿리즈(Goodreads)에 나옵니다. 아무래도 출판사나 작가나 이 책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나 봅니다. 지금까지도 읽히고 있고, 진화생물학에서는 고전같은 책이 될 것을 예상하고 일부러 출간 날짜를 그렇게 새해 첫날인 1월 1일로 조정했지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그렇게 오래 된 책인지라, 저는 이 책의 서문을 세 개나 읽어야 했습니다. 처음 책이 출간됐을 때에 있던 서문, 10년 좀 넘은 다음에 재판 서문, 30년 기념판 서문을 읽어야 했습니다. 그냥 서문을 안 읽고 넘어가면 어떨까 싶으실 수도 있겠지마는, 이 책은 서문부터가 중요했습니다.

작가인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이 책을 어떤 의도로 썼는가만 있는 게 아닙니다. 책 전체 내용에 대한 청사진이며, 책 제목이 왜 이렇게 됐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습니다. 책 제목으로 추천된 수많은 것들 중의 일부는 책 안의 소제목으로 탈바꿈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작가는 이 제목으로 인해서 책이 오해를 받는 면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을 쓰면서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출판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같은 진화생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도움도 많이 받은 모양입니다. 더러는 한 챕터를 쓰는 데에 기여한 바가 리차드 도킨스보다 더 큰데도, 그 챕터의 저자가 되는 것을 한사코 마다한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본문을 읽기 전에 서문도 읽어두면 도움이 됩니다. 읽으시길 바랍니다. 다만, 서문 읽다가 본문을 읽을 의지가 꺾일 수 있습니다.

처음에 쓰면서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중생들부터, 이 분야를 전공하려는 신참, 그리고 이미 어느 정도 이 분야에 전공자인 사람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책을 쓰고자 했다고 하는데, 딴에는 비유를 해 가면서 여러 가지 예를 들어서 자세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설명이 너무 길어서 주제가 뭔지 모르겠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본문을 읽다 보면 이런 마음도 들었습니다. 너무 친절이 과하면, 때로는 화가 나는 걸까 하는 것이죠. 

물론, 자세히 설명을 해서 쓰긴 했지만 어떤 부분은 과감하게 가지치기를 해서 복잡한 것을 너무 단순하게 쓴 부분도 있었는데, 그게 어떤 면에서는 더 어렵지 싶었습니다. 특히나 우리 몸에 가지고 있는 유전정보의 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도서관에 비유했는데, 그게 문학적이랄까 문과적 소양에는 더 이해하기 좋을 수도 있지만 너무 비유를 해서 유전자랄까 유전정보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를 더 힘들게 하지 싶었습니다.

몇몇 챕터들은 한 챕터가 생물학과에서 2시수짜리 한 과목의 한 학기 강의 소재가 될 법한 것을 한 챕터에 몽땅 때려넣은 것이라서, 그것을 이 작은 챕터에 몰아넣으면서 이렇게 재미나게 썼다는 데에는 경탄을 금치 못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어느 챕터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한 학기 수업을 한 챕터에 다 집어넣은 만큼 이야기가 너무 많고 예로 든 것도 너무 많아서, 그 챕터가 차고 넘치고 터질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이 책은 읽으면서 대체로 너무 재미났고 신났고 잘 읽혔고 나름 가벼웠는데, 막상 읽은 내용을 쓸라면 내가 뭘 읽긴 읽었는지, 도대체 뭐가 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 망각을 일으키기에, 책 제목을 이기적 유전자가 아니라 차라리 레테의 강이라거나, 망각의 유전자라거나 하는 식으로 바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2장을 제일 재미나게 읽었지만, 12장과 13장이 제일 정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초판에는 11장까지만 있던 것을 12장과 13장은 나중에 넣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서문에서 나오듯이, 읽고 나서 없던 우울증이 생긴 학생들 때문에 이 책을 절대 읽지 말라고 했다는 선생님의 편지며, 이 책 읽고 너무 인생과 삶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들의 원망과 질타에 못이겨 12장을 쓴 것 같습니다. 

그래, 이타주의적인 게 이롭다는 것을 나름대로 설파해서, 세상은 이타주의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마음을 위로해 주고팠던 것 같은데, 그래도 과학인지라 결국 차갑습니다. 13장은, 나름 새로운 생물학적인 지식을 첨가해서 갑자기 벙 뜨게 끝나 버린 것 같은 것을 몰아서 정리하고 깔끔한 마무리를 하고자 쓴 것 같은데, 13장 자체가 너무 방대해져 버려서 우주를 헤매다 나온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재미났고, 진화생물학이라는, 다소 무겁지 않을 수 없는 주제이지만 생각보다 가볍게 읽혔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한글 번역판 표지입니다.

책의 두께는 대략 360쪽입니다. 1976년에 첫 출간돼서 지금까지 읽히고 있는 책인데다가 판형이 워낙 다양해서 496쪽짜리도 있습니다. 글발이 좀 많은 책인데다가 진화생물학이라는,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 자체가 가볍지가 않아서 360쪽짜리 책이라고 해도 그 정도 두께의 일반적인 소설을 읽는 것보다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책도 빠르게 읽으실 수 있는 분이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책 뒤쪽에는 endnote라고 권말에 주(註)를 달아놓은 게 있어서 실질적인 책 페이지수는 300페이지 정도나 그 이하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읽어보시면 실질 두께보다 책이 안 넘어가서 더 두꺼운 책이라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챕터 개수는 13개인데, 한 챕터가 짧게 느껴지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절대로 초급용 도서는 아닙니다.

이 책, 1976년 초판 출간됐고, 1989년 재판 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2015년에 이 책을 읽을 당시에는 2006년 출간된 30주년 기념판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 40주년 기념판이 나왔다고 합니다. 진화생물학을 다루고 있는 책으로 이 책만큼 전공자와 비전공자를 모두 아울러서 널리 읽히는 책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한글 번역판도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늘 오역논란에 시달리거나, 원서가 번역서보다 더 쉬운 책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래서 번역판도 정확한 주기는 없지만 자꾸 새로 내놓고 있습니다. 영어가 어려우시면 되도록 새로 나온 한글번역판으로 읽으시면 좀 덜 오역이 있고, 약간 더 쉬운 책을 읽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이 책, 원서든 번역판이든 꼭 읽으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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