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은 건 2011년 가을이었습니다.
남자로 주인공 바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말에, 별로일 거라는 생각을 먼저 했더랬는데, 재밌다는 평도 많고 해서 사게 됐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경우, 제대로 번역된 책을 못 읽어서인지 앞뒤가 맞지 않고 정신 없고 일관성 없고 몽상적인 이야기만 나오다가 엉뚱하게 다시 현실로 돌아오고 끝나는 식의 이야기에 어떤 반감을 느끼던 차였습니다.
물론, 한글판이든, 영어 원서든 제대로 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으신 분들은 대체로 평이 좋았지만, 제 경험이 그런 거여서요.
그래도 베스트셀러 인데다가 사람들 평이 워낙 좋은 책이라서 나도 읽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할인하는 책 목록에 있기에 옳다구나 하고 샀습니다. 그렇습니다. 할인한다고 샀습니다. 가끔 할인하면 안 읽을 책도 사기도 합니다.
하여튼 그렇게 해서 사더니 다행히도 읽었습니다.
그런데, 읽고 보니 책장을 덮으면서 참 재밌는 책 한 권을 읽었다고 싶은 겁니다. 몰라서 그렇지 사서 읽은 거 1도 후회 안 되는 책이었습니다.
이야기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함을 견딜 수 없는 소년에게 커다란 소포가 배달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소포를, 뜯어보니 tollbooth 장난감이 있습니다. tollbooth라니 뭔가 싶으신 분도 있죠? 고속도로 통행료 받는 곳 생각하시면 됩니다.
마일로가 이 tollbooth 장난감 세트의 지도를 잘 읽고 요금 낼 돈도 챙겨서 tollbooth, 그러니까 통행료 내는 요금소를 지나면 어느 새 더 이상 장난감이 아닌 진짜 자동차를 타고 진짜 도로를 가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tollbooth를 통해서 신기한 세상으로 간 마일로가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만나고 새로운 상황들을 맞으면서 겪은 모험 이야기입니다.
안 재밌을 수가 없겠죠?
약간 정신 산만하게 이야기가 펼쳐지긴 하지만, 그만큼 정신없이 재밌었던 책으로 기억납니다. 이 책이 소년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해서, 어릴 적 잘못 읽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막들로 인해서, 기피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원서로 읽어보고픈 마음이 생길 정도록 저는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책 두께는 256쪽이러 그다지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책입니다. 챕터수는 20개라서 한 챕터가 길다는 느낌이 크게 들지는 않았습니다. 2011년이면 초급이었던 제가 어렵지 않게 읽었기 때문에 단어와 문장이 어렵지 않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만 읽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빨리 갑니다.
어렵지 않고 잠깐 읽었다 싶은데, 시간이 훅 가 있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고로, 이 책은 도끼 썩는 줄 모르고 신선들이 장기 두는 거 구경하는 나무꾼 신세를 면치 못하게 하는 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책, 재밌어서 당연히 번역본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온 적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재밌는 책의 한글 번역본이 절판됐습니다.
아무래도 한글로 즐기실 분들은 도서관이나 중고 서점을 이용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아래는 제가 읽은 지 얼마 안 됐을 때, 적어놓은 줄거리입니다. 스포일러 가득하오니, 원치 않으시면 읽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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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함을 견딜 수 없는 마일로라는 소년에게 커다란 소포가 배달됩니다. 소포에는 ‘시간이 엄청 남아나는 마일로에게’라고 씌여있고, 뜯어보니 tollbooth(도로 요금소, 톨게이트) 장난감이 있습니다. 먼저, 마일로는 장난감 세트에 들어 있는 지도도 숙지하고, tollbooth 통과할 때 필요한 돈도 챙기고 드디어 놀이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자동차에 올라 tollbooth를 통과하니 진짜 길을 운전하며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잘 왔다고 생각을 하며 가다가 dictionpolis에 가려고 했는데, 아무 머릿속이 텅 비어버려서 막 가다가 길을 잃고 차도 멈추고 그러다가 이상한 곳에 가게 되고 거기서 경비견인 Tock을 만나게 됩니다.
드디어 목표했던 곳인 dictionpolis 라는 도시에서 가게 되는데, 마침 장이 서서 구경합니다. 단어 스펠링 가르쳐 주는 벌과 괴상하게 생긴 bug라는 존재의 옥신각신 말다툼하는 데 옆에 있다가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감옥에서 만난 나이 지긋한 which라는 역할을 했던 할머니는 이야기를 해 줍니다.
이 악마들과 유령과 온갖 못된 귀신들이 살던 황무지에 wisdom이라는 왕국을 세운 왕에게 두 아들이 있었고 입양된 두 딸이 있었는데, 두 아들은 서로 시기와 질투가 너무 심해서 아버지 사후에도 싸우느라 바빴지만, 그나마 그 두 공주들이 중심을 지켜주고 판단을 내려주기를 잘 해서 나라가 평안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주들이 누구의 편도 아니라 중간의 입장에 있자, 두 젊은 왕들은 공주들을 추방해서 둥둥 떠 있는 성에 가두어 버렸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나라가 엉망이 되고 이 할머니도 감옥에 갇혀서 그냥 뜨개질이나 하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갇힌 마일로에게 문을 열어주며 나가라고 합니다.
나가자마자, 마일로는 성에서 하는 축제에 가게 됩니다. 연설같은 것을 하라고 왕이 시켜서 마일로는 하려고 하지만
왕이 끊어버리고, 왕이 하는 말은 온갖 먹고 싶은 음식 이름이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 후에, 자신이 말한 음식이 그대로 날라져 나옵니다.
쫄쫄 굶는 마일로 앞에 후식으로 나온 맛난 파이는 엄청 맛있지만 많이 먹으면 배앓이를 하는 것이라고 해서 마일로는 적당히 먹고 나중에 먹게 하나 싸둡니다.
연회가 끝나고 왕이 무언가 중요한 말이나 일을 하려고 하는데, 모두들 떠나버리고 맙니다. 그런 왕한테 두 공주를 데려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마일로는 왕의 형제에게 가서 마찬가지로 허락을 받으면 공주들을 구출해도 된다는 말을 듣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digitopolis라는 곳에 가는데, 거기 광산에서는 숫자를 캐고 있고 캐다가 발견한 보석들은 별 가치가 없다고
한데 쌓아놓고만 있습니다. 그곳에서 수학자를 만나는데, 그가 바로 왕의 형제입니다.
그도 공주들의 존재를 그리워하고 있지만, 왕이 공주들의 귀환을 원한다고 하자 무조건 왕에게는 반대한다고 했다가 마일로가 잘 생각해서 "왕이 반대하는 것은 다 반대한다는 것에 서로 동의했다면 왕하고 같은 의견인 것 아니냐."는 말을 합니다. 수학자는 이에 그만 굴복하고 공주들을 데리고 올 것을 허락합니다. 그리고 계산하는 마술 연필을 선물로 줍니다.
마일로는 tock과 bug와 함께 열심히 가다가 중요치 않은 일로 800년 넘는 세월을 보내게 하려는 악마에게 걸려서 수일동안 허송세월도 하고,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는 악마에게 걸리지만 여행 중에 생긴 망원경으로 그 악마의 절대 안 무서운 외관을 알게 돼서 쫓아버리고, 계속 모든 것을 기록하려고 하면서 묻고 묻고 또 묻고 기록하는 이상한 악마도 만나지만 천신만고 끝에 공주들이 있는 성에 도착합니다.
얼른 돌아가려는 마일로에게 공주들은 쉬고 가라 그럽니다. 잠시 쉬고 있는데 악마들이 올라온 계단을 도끼로 찍어버려서
성이 허공으로 계속 날아올라서 tock이라는 개의 등에 엎혀서 모두 뛰어내려서 정신없이 빠져 나옵니다.
그 뒤로 온갖 악마들과 거인까지 쫓아오고 정말 죽기살기로 뛰어나오고 드디어 wisdom 왕국 경계에 까지 오자 왕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기다리고 있고 수학자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들을 보고 악마들과 거인들은 다 줄행랑을 치고, 왕은 공주들의 귀환을 축하하는 퍼레이드를 하고 앞으로 3일간 축제 카니발을 열겠다고 합니다.
공주를 구해온 세 영웅, 마일로와 tock 그리고 bug에 대해서 음유시인들이 노래도 하고 정말 신이 나지만, 축제가 끝나고 이제는 돌아갈 시간입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마일로는 다시 tollbooth로 돌아가고 tollbooth에 돈을 내는 순간 다시 집에 와 있는데, 현실에서의 시간은 고작 1시간밖에 안 지났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저녁먹을 기운도 없고 그냥 자 버립니다.
다음 날, 학교에서도 tollbooth 생각에 빠져 있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아뿔싸 tollbooth는 없고 있던 자리에 다른 이들에게도 이 tollbooth가 필요하며, tollbooth에서 좋은 경험들을 하고 맡은 바 임무도 잘 수행했으니, 이제 그곳에 가는 방법을 스스로 알 거라고 합니다.
안타까와 하지만, 마일로는 이제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에서 새로움을 경험하고 맛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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