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6일.
드디어, 이 책을 다 읽었습니다. 그토록 소문이 자자하던 책을 읽은 겁니다.
2009년 9월에 스웨덴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2013년 즈음에 이미 영어로 번역돼서 원서 읽기 카페에서 화재가 되어오고 있었습니다. 별 관심이 없이 시간만 흘러가던 중 2014년이 되어도 이 책에 대한 열기는 식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곧 영화까지 나온다는 겁니다.
얼마나 재미난 책일까 싶어서, 저도 결국에는 구해다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성격을 말하자면, 그냥 이 책은 블랙 코메디라는 정도로 간단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심각해야 될 부분이 어떨 때는 굉장히 우습게 묘사되기도 하고, 잔인하다고 느껴지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전체적인 분위기는 유쾌 상쾌 통쾌 라고 보시면 됩니다.
내용 자체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그저 모든 것이 우스갯 소리라고 보면서 읽으면 그냥 읽으면서 즐거운 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류의 유머 별로 안 좋아하시는 분들이나, 마음의 준비가 안 된 분들에게는 좀 별로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이 책에서는 실제로 있었던 역사들을 다루고 있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역사 소설이냐 하면 그렇게 보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인 ‘앨런’을 역사상 주요한 장면의 한복판에 있어서 중요하나 일들이 그 방향으로 가도록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그 과정이 너무 재미났고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역사 관련된 공부를 너무 안 해서, 잘 몰라서 헤맸던 부분들이
좀 있었는데, 만약 세계사에 대해서 전체적인 조망을 할 수 있는 지식과 시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면 더 재미나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정통 역사 소설은 아니고, 실제 일어났던 역사를 소재로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어서 재미난 한 편의 블랙 코메디를 완성한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데올로기도 나오고, 전쟁도 나오고, 폭력배도 나오고, 여느 책에서 나올 법한 거, 안 나올 법한 거, 어지간한 건 다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많이 버라이어티하고, 이것 저것 섞인 짬뽕이고, 안 어울릴 법한 것들이 그냥 자연스레 어우러져 있는 것 같습니다. 사건 전개 자체가 그다지 심각하지가 않아서, 편안하게 읽어나갈 수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앞부분은 편안하게 누군가와 대화하듯이 그저 읽게 됩니다.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별로 들지 않고, 차 마시면서 혹은 술 한 잔 걸치면서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그런 느낌으로 서술됩니다. 작가가 오랜 기자 생활을 한 사람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렇게 서술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그게 아주 이 작품과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결국 영어책도 번역본이라서, 제가 느낀 문체가 다는 아니겠지만 주인공인 앨런과 그가 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 인생이 그다지 화려하게 잘 풀린 경우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쓰는 문장과 표현도 그다지 세련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서술방식과 투박한 말투가 더 편안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듣는 그런 느낌을 잘 살려줍니다. 중반 넘어가면서, 저같이 세계사 모르는 사람은 엄청 헤매게 되는 부분이 나옵니다. 주인공이 ‘앨런’이니만치, 그의 이야기가 당연히 제일 많이 나오는데, 100세까지 산 노인이라지만 100세 노인이 아닌 소년이나 소녀로 처리했을 때 나올 법한 시선으로 그려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앨런이, 몸만 어른이고 노인이지, 마음은 어린 소년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적인 섬세한 심리묘사나, 외적인 상황이나 행동 묘사 같은 것은 많지 않습니다. 주인공인 앨런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모두가 다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많아서 그러한 이야기로 책 한권이 꽉 채워지고 넘칠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읽으면서, ‘
Thirteen Reasons Why(루머의 루머의 루머의 원서)’와
‘The Adventure of Tom Sawyer(톰소여의 모험 원서)’,
‘The Adventure of Huckleberry Finn(허클베리핀의 모험)’이 생각 나기도 했던 책입니다.
내용이나 문체나 형식이 모두 다르지만, 작가가 할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느낌과 세세한 묘사에 얽매일 필요 없이, 그냥 하려는 이야기가 너무 재밌고, 작가만의 색깔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영화가 나온 2014년 6월 이전에, 2013년에 우리나라에 이미 한글번역서가 나와 있었습니다. 독특하고 재미난 이야기가 한 권에 가득 들어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의 반응도 가히 폭발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여세를 몰아서, 영화도 개봉이 됐는데요.
저도 가서 영화를 봤습니다. 저같은 경우, 미리 책을 보고 갔기 때문에 책에 나온 내용을 영화로 직관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하상욱’이라는 저는 모르는 처음 보는 작가가 나와서 영화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별로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봤는데, 영화는 재밌기도 했지만 책에 있는 내용을 담아내기에는 너무 영화가 짧았습니다. 책을 미리 보지 않은 분이 옆에서 같이 봤는데, 그분은 책에 비해서 토막 토막 잘린 것 같은 영화를 그닥 좋아하시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쉬웠던 건, 그 긴 소설 속에서 짤막하게 김일성과 김정일을 바보같이 묘사한 게 나오는데, 그게 영화에 안 나왔던 점입니다. 작가가 북한을 보는 시각이, 우리나라를 보는 시각과 겹쳐지는 것 같아서, 뭔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래도 그 긴 소설 속에서 어쩌다 스치듯이 나왔는데 그걸 빼먹어서 좀 아쉽기도 하고,그게 안 나온 게 차라리 나았다 싶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이 책은 판형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략 400쪽의 약간 두꺼운 느낌의 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봤던 판형은 책이 문고판 느낌이어서 책 자체는 크지 않고 가볍고 들고 다닐만 했지만, 약간 두껍다 그런 느낌 확실히 들었습니다.
챕터는 29개 정도 되는 책입니다.
대략 한 챕터가 10페이지 좀 넘어간다고 보시면 되는데, 챕터가 길이가 들쭉날쭉입니다. 긴 챕터는 굉장히 길다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특히나 등장인물이 자신이 지나온 삶 이야기 하는데, 그게 재미난 부분은 같은 길이도 금방 읽는데,
좀 지루한 서술이 나온다 싶은 부분은 안 그래도 긴 게 더 길게 느껴집니다.
챕터북같이 아주 짤막 짤막하게 읽는 것에 익숙하신 분들이 읽기에는 좀 힘듭니다. 읽는 숨이 그래도 좀 짧지 않은 분들이 읽기 편할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도 워낙 많고, 전체적인 줄거리도 좀 중구난방이라서 아주 초급이신 분들이 읽을 책은 아니지만, 영어책이 번역본이라서 번역본 특유의 쉬운 단어가 쓰인 편이라, 열정과 투지 있으신 분들은 초급이셔도 도전 가능이다 보시면 됩니다.
짤막한 스포일러 있는 이야기 밑에 적겠습니다. 원치 않으시면 아래 부분은 읽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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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에 있던 100세 노인 앨런(Allan Karlsoon)은 자신의 생일잔치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는 그게 마음에 안 듭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창문 밖으로 도망칩니다. 그리고 그렇게 요양원을 도망친 앨런은 돌아다니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이런 저런 크고 작은 사고들을 치기도 합니다.
앨런과 그가 만난 사람들은 자신들의 과거지사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재밌을 때도 있고, 어르신들 이야기 들을 때 늘 그러하듯이 따분하고 지루할 때도 있습니다. 소설이 중반 넘어가면서, 앨런이 100년을 살면서 만난 장군이나, 미국 대통령, 중국 모택동이나,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 등이 나옵니다.
그리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두 명이나 살인을 하게도 되고, 한 명을 죽일 뻔한 사건을 겪지만, 농담처럼 별 탈 없이 무던히 넘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앨런은 자신이 구해줬던 아인슈타인의 이복형제의 전부인과 결혼하여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되는, 행복한 결말로 결국 끝이 납니다.
시작이 확 시선을 끌었던 것에 비해서, 결론은 담담합니다. 전반적으로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책이기도 하고, 작가 자신의 개성이 강하게 살아 있기도 합니다. 아! 앨런은 10대 시절부터 폭파전문가입니다.
이 스포일러를 꼭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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