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에 이 책, ‘The Catcher in the Rye(호밀밭의 파수꾼)’을 샀던 건, 유명한 고전이 할인을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딱 책을 배송 받아보니, 문고판에 손에 착 감기는 얇은 느낌의 책이 금방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뭔가 고전(古典)은 고전(苦戰)하면서 읽는 거라니까 싶어서 금방 펴들지 못하고 있다가, 2015년의 어느 날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혼자서 읽기에는 좀 부담스럽고 도저히 끝내지 못할 것만 같아서, 북클럽을 열어서 다른 분들과 읽어서 꼭 포기하지 않고 읽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해서 읽은 책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북클럽으로 읽어서 다행이다 싶은 책입니다. 책이 좀 어려워서, 서로 도움 받으면서 읽는 게 더 좋았던 책입니다.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시각도 볼 수 있어서 좋았던 북클럽이었습니다.

그냥 딱 펼쳐서 읽기 시작하자마자부터 계속 쭉 시종일관 어두운 분위기여서 읽는 내내 마음도 불편하고 우울해지게 만들었던 책입니다. 기분전환용으로는 절대로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춘기의 방황하는 마음을 갖은, 그리고 무언가 가식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들에 대한 저항감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사춘기 소년의 심리묘사는 정말 잘 한 것 같습니다.
물론, 겉으로 표출되는 것은 많이 달랐지만, 사춘기 때 좀 이런 상태였지 싶은 부분이 많았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로, 가식으로, 혹은 참아야 한다는 교육의 효과로 나는 참고 있었던 부분들에 대해서 이 책의 주인공인 홀든은 거침없고 유감없이 일침을 가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홀든이 대단히 깨끗하고 정직하고 부지런한 스타일은 아닙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니면 아무것도 안 하려 든다는 치명적인 약점까지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세상에 싫어하는 게 너무 많습니다.
이 책은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사춘기 시기에 대한 묘사의 극단적인 끝판왕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즈음에는 청교도 쪽에서는 완전히 금서로 다룰 만큼, 여기 나오는 주인공이자 사춘기 소년인 홀든(Holden)의 심리상태와 그가 겪는 일들에 대한 묘사는 나름 파격적입니다.
그렇다고 사춘기에 읽으면 안 될 내용이냐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춘기 청소년에게 읽혀도 괜찮을 듯합니다. 그저 시대가 많이 달라졌어도 이 책을 읽어봤을 때, 이 책이 사춘기를 묘사하고 있는 방식의 독특함은 빛바래거나 낡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책 두께는 192쪽에서 277쪽 정도로 판형에 따라서 굉장히 다른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제가 읽은 것은 문고판의 234쪽 정도 되는 책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다 읽은 제 판단으로는 대충 200페이지 내외의 책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글발은 좀 있었지 싶습니다. 엄청 빡빡하다는 아니지만 적어도 널널한 글발은 아니었습니다.
다 읽고 난 뒤에, 이 책을 원서로 무척 읽고 싶어하는 친구가 있어서 줘 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그 친구가 읽었나는 확인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챕터 개수는 26개입니다. 한 챕터가 그다지 긴 편은 아니지만, 시종일관 무겁고 답답하고 우울한 분위기의 이 책을 빠르게 읽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천천히 읽으면서 장마철 눅눅함이 찐하게 배어들 것만 같은 이 무거운 주제의 답답한 분위기에 찌들어서 천천히 읽었던 책입니다.
그래서 기분 전환용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초급용이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챕터가 짧아도 뭔가 욕도 많이 나오는데, 그 욕이 단어를 은근히 찾느라 오래 걸렸던 책이라서 초급용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원전을 그대로 느끼고픈 분들한테는 적격입니다. 이 책은 번역불가에 가까운 표현들이 많다고 느껴져서 그렇습니다. 이 책이 가진 분위기와 몇몇 표현들이 한글로 번역이 좀 힘들지 싶습니다.

1951년에 초판이 출간된 고전이니만치 한글 번역판도 다양한 버전으로 존재합니다. 우리집에 있었던 번역판의 경우에는 이 책에서 주인공이 쏟아내고 있는 다양한 욕들이 전혀 나오지 않고, 너무나도 정갈하고 얌전하게 말을 하고 있어서 원전을 읽고 추천해 준 사람으로서는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읽을 때 제딴에는 고생 고생 하면서 읽은 고전이라서, 영어로 읽기 어려우신 분들에게는 번역본을 읽으시는 것도 추천하고픈데, 뭐가 좋을 지는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여기에 표지를 올린 번역본은 제가 본 그 번역본은 아닙니다.

영화가 나왔나 찾아봤는데, 2018년에 ‘호밀밭의 반항아(Rebel in the Rye)’라는 제목으로 나온 영화와 2019년에 ‘샐린저(Salinger)’라는 제목으로 나온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습니다. 이 작품이 작가인 Salinger(샐린저)의 경험에 바탕을 둔 소설이라는 점 때문에 소설 자체보다는 소설을 쓴 작가의 생애에 연관시켜서 영화를 만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인 면을 많이 담고 있는 소설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작가가 학교를 다니다가 퇴학 당한 일들이 좀 있었습니다. 아마 그래서 영화들도 그의 생애 쪽에 더 초점을 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호밀밭의 반항아는 현재, 시리즈온, 티빙, 웨이브, 와차, 넷플릭스에서 돈 주면 다 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샐린저의 경우 시리즈온과 웨이브에서 구매할 수 있다고 나옵니다. 관심 있으시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스포일러 좀 있는 줄거리를 적어놓은 게 있어서 아래에 옮겨 놓았으니, 원하시는 분들만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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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교에서 이미 퇴학 당한 주인공 홀든(Holden)은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도 퇴학 당하고 나서, 학교를 탈출합니다. 사춘기이기에 이런 것도 굉장히 즉흥적인 심사에서 한 일이지만 사춘기면 멀쩡한 집에 있다가도 가출도 하는 마당에, 기숙사쯤 나오는 거야 소설에서 기본이지 싶은 마음에서 약간 기대를 하고 봤습니다.
그러나, 기숙사 나온 이후로 주인공의 행보는 그다지 밝지 않습니다. 차라리 기숙사에 있을 때보다 더 어둡고 미련스럽고 우울하고 외로왔을 뿐입니다. 역기 구관이 명관이고 집 나오면 개고생이다 싶고, 밖에 나와 봤자 세상에 더 나은 곳이라는 것은 도대체 없는 걸까요.
겉잡을 수 없는 우울함과 외로움에 동요돼서 벌이는, 처음 보는 아가씨들과의 술자리(결국 그는 콜라를 먹었지만)며, 엉겁결에 여자를 모텔방에 들이게 되고 급후회를 하면서도 그 여자와 계속 뭔가 대화를 하고 싶어하는 게 참 딱하기도 했습니다. 딱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게 나는 언제 마음이 저렇게 사춘기 때 내 마음 속에 폭풍우가 요란하게 칠 때 저렇게 마구 달려보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안톨리니 선생이었나, 이름은 맨날 헷갈리지만 전에 다니던 학교의 영어 선생의 집을 찾아가서 결국에는 선생의 조언도 듣고 이제 마음의 안정을 찾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마는, 작가는 주인공에게 마지막 시련으로 선생이 변태, 혹은 게이일 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주면서, 그런 것에 대해서는 기겁을 하는 홀든을 궁지로 몰아갑니다. 뭐랄까 그에게는 마지막 보루다 싶은 것에 큰 흠을 내서, 그를 완전히 내쳐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홀든 자신도, 역에서 자다 깨다 하면서도 선생에 대한 판단을 확실히 내리지는 못합니다. 결국 홀든은 지금 이곳에서의 삶에 대해서 분연히 떨치고 떠나야 하겠다는 결심을 내립니다.
아무래도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선생이라는 환상으로 바라보던 선생에 대한 실망감도 있겠지만, 친구도 선배들도 학교도 다 싫은 마당에도 떠나지 말아야 하는 많은 이유 중에 하나였던 게, 이 선생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여튼, 결국 홀든은 떠나려 하고 어떻게 되나 나름 노심초사하고 읽다가 갑자기 떠나지 않기로 하고 끝이 나 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홀든에게 여동생인 피비(Phoebe)는 어떤 존재였을까요. 약간 자식같지는 않았을까요. 자신이 망가지고 어딘가 낯선 곳에서 반쯤 인생 버리는 셈 치고 살 궁리하면서 떠나는 마당에, 정 그렇다면 오빠를 따라 나서겠다는 피비에게 학교에 돌아가라고 하면서, 결국에는 홀든 자신이 떠나는 걸 포기하게 됩니다.
나는 떠나지만, 나는 망가지지만 내 자식은, 내 여동생은 그러면 안된다는 것, 그리고 그 여동생에 대한 보호본능으로 인해서 홀든은 결국 집으로 돌아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나 봅니다.
결국 행복한 결말인 셈인데, 뭔가 비극으로 끝난 다른 고전들보다 읽고 뭔가 끝이 정리가 안 된 이 느낌은 어찌된 건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소설은 어떤 큰 해결책을 확실히 제시하지 않고 문제제기나, 이런 사춘기 소년의 몰아치는 폭풍우같은 심리묘사만 잘 해도 나름 수작이 되는 게 아닌가 짐작해 봅니다.
아, 그리고 제목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된 이유가 궁금하실 것 같아서 첨언합니다. 이 책 안에서 나오는 이야기인데, 주인공인 홀든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합니다. 한쪽이 절벽인 호밀밭에서 노는 어린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요. 호밀밭에서 노는 어린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진다는 설정은, 어린 시절을 지나서 사춘기가 지나 어른이 되는 것을 상징합니다.
사춘기 시절을 겪는 것이 마치 호밀밭에서 잘 놀다가 절벽으로 급추락하는 것과 같이 묘사된 겁니다. 홀든이 얼마나 사춘기를 힘들게 겪었는가, 그리고 사춘기라는 그 시기가 얼마나 한 인간에게 극단적으로 버거운 시기일 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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