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지조차 까마득한 오래 전에 한글판 ‘노인과 바다’를 읽었습니다. 원작이 짧은 만큼, 내가 읽은 번역판도 짧았지만, 엄청 짧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서, 축약본을 읽은 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물론, 그게 축약본이라고 쓰여 있지 않았다는 기억도 납니다. 대충 줄거리를 어디선가 들어서 스포일러를 당해서 그랬던 건지, 번역서로 읽었던 노인과 바다는 뭔가 엄청 실망스러웠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도 재미도 감동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뭔가 훌륭한 작품이라는 인상을 줬었다면, 그때 헤밍웨이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았을 터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책을 피해 다녔습니다. 세월이 흘러, 까페에서 공동구매를 하는 헤밍웨이 원서시리즈를 산 건, 솔직히 뭐에 홀린 듯이 산 거였습니다. 왜 샀을까요. 도대체 내가 그의 책을 왜 샀을까요.
수년이 흐른 뒤, 읽은 만큼 새 책을 살 수가 있다는, 내 스스로가 정한 규칙에 따라서, 나는 새 책을 사기 위해 읽을 만한 책을 찾다가, 얇은 책을 찾다보니 이 책을 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 ‘The old man and the sea’를 무척이나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번역본을 읽었을 때는 그토록 실망했던 책이었는데도 말이죠. 참 이상합니다.
워낙 유명해서 다 알려진 책인지라, 스포일러 좀 하겠습니다.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여러 날 잡지 못했던 노인이, 결국 조수로 일하던 소년도 잃고, 홀로 고기잡이에 나섭니다. 고기 좀 잡아보겠다고, 먼 바다로 나선 노인은 결국 자신의 배보다도 큰 고기를 잡습니다. 고기가 너무 커서 배 보다 더 큰 겁니다. 결국 배 위에 올리지도 못하고 배 옆에 묶어서 싣고 오다가 각종 상어들의 공격에 고기는 뼈만 남는 겁니다. 3일만에 돌아온 그를, 소년이 돌보지만, 그는 이미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원작을 읽어봤을 때 그 과정이 의외로 굉장히 흥미로왔고, 물고기를 애틋하게 사랑하면서도 그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자신의 신세가 죄를 짓고 사는 것 같다고 한탄했다가, 물고기마저도 다른 물고기를 먹고 살지 않냐며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노인의 독백 등, 그의 많은 혼잣말들이 예사롭지 않았고, 깊이가 있는 말들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헤밍웨이의 다른 책도 더 보고 싶어졌습니다. 과거에 읽은 한글판에서 느끼지 못한 매력이 있었는데, 번역문에는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요. 번역으로 풀어낼 수 없는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에서 온 문제일까요, 아니면 내가 나이를 먹어서 이 작품의 진가를 느끼게 된 것일까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읽은 책은 문고판으로 손에 쏙 들어와서 들고 다니면서 읽기도 좋은 책입니다. 127쪽으로 페이지수도 챕터북보다 약간 두꺼운 책 수준입니다. ‘The old man and the sea’ 딱 한 작품만 들어가 있습니다. 문단만 나눠져 있고 챕터가 따로 나뉘지 않고 쭉 서술되는 형태라서 끊어 읽기는 어렵습니다.
저같은 경우 읽다 말다 하면서 열흘에 걸쳐서 읽었는데, 그렇게 읽다 보면 저절로 읽다가 만 부분 바로 이어서 읽게 안 되고 자꾸 앞으로 더 넘겨 가면서 읽게 됩니다. 뭔가 연결이 안 돼서도 그렇고, 문장 하나하나가 읽다 보면 앞에서 읽었던 문장을 다시 곱씹어 보게 만드는 이상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단어가 은근 어려웠습니다. 평소에 영어로 소설 읽으면서 본 단어와는 좀 다른 단어들이 종종 나왔던 걸로 기억납니다. 그런데 그게 문체가 좀 남달라 보인달까 뭔가 운치가 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챕터가 끊기지 않는 것도 그렇고, 간혹 보이는 단어의 난이도도 그렇고 초급용 도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중고급이랄 정도로 과하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저는 열흘에 걸쳐서 나눠서 읽었지만, 한 자리에서 쓱 읽고 나중에 들고 다니면서 중요했던 문장들은 한 문장, 한 문장 다시 뜯어보면 좋을 것 같이 뭔가 여운이 많이 남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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