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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Classic)

[서평] The Old Man and the Sea

by 글대장장이 서야 2023. 5. 13.

언제인지조차 까마득한 오래 전에 한글판 ‘노인과 바다’를 읽었습니다. 원작이 짧은 만큼, 내가 읽은 번역판도 짧았지만, 엄청 짧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서, 축약본을 읽은 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물론, 그게 축약본이라고 쓰여 있지 않았다는 기억도 납니다. 대충 줄거리를 어디선가 들어서 스포일러를 당해서 그랬던 건지, 번역서로 읽었던 노인과 바다는 뭔가 엄청 실망스러웠습니다. 

제가 사서 봤던 책의 표지는 이렇게 바다가 바탕화면이고 물고기도, 배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판형에서는 물고기나 배가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도 재미도 감동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뭔가 훌륭한 작품이라는 인상을 줬었다면, 그때 헤밍웨이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았을 터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책을 피해 다녔습니다. 세월이 흘러, 까페에서 공동구매를 하는 헤밍웨이 원서시리즈를 산 건, 솔직히 뭐에 홀린 듯이 산 거였습니다. 왜 샀을까요. 도대체 내가 그의 책을 왜 샀을까요.

수년이 흐른 뒤, 읽은 만큼 새 책을 살 수가 있다는, 내 스스로가 정한 규칙에 따라서, 나는 새 책을 사기 위해 읽을 만한 책을 찾다가, 얇은 책을 찾다보니 이 책을 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 ‘The old man and the sea’를 무척이나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번역본을 읽었을 때는 그토록 실망했던 책이었는데도 말이죠. 참 이상합니다.

워낙 유명해서 다 알려진 책인지라, 스포일러 좀 하겠습니다.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여러 날 잡지 못했던 노인이, 결국 조수로 일하던 소년도 잃고, 홀로 고기잡이에 나섭니다. 고기 좀 잡아보겠다고, 먼 바다로 나선 노인은 결국 자신의 배보다도 큰 고기를 잡습니다. 고기가 너무 커서 배 보다 더 큰 겁니다. 결국 배 위에 올리지도 못하고 배 옆에 묶어서 싣고 오다가 각종 상어들의 공격에 고기는 뼈만 남는 겁니다. 3일만에 돌아온 그를, 소년이 돌보지만, 그는 이미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원작을 읽어봤을 때 그 과정이 의외로 굉장히 흥미로왔고, 물고기를 애틋하게 사랑하면서도 그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자신의 신세가 죄를 짓고 사는 것 같다고 한탄했다가, 물고기마저도 다른 물고기를 먹고 살지 않냐며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노인의 독백 등, 그의 많은 혼잣말들이 예사롭지 않았고, 깊이가 있는 말들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헤밍웨이의 다른 책도 더 보고 싶어졌습니다. 과거에 읽은 한글판에서 느끼지 못한 매력이 있었는데, 번역문에는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요. 번역으로 풀어낼 수 없는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에서 온 문제일까요, 아니면 내가 나이를 먹어서 이 작품의 진가를 느끼게 된 것일까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읽은 책은 문고판으로 손에 쏙 들어와서 들고 다니면서 읽기도 좋은 책입니다. 127쪽으로 페이지수도 챕터북보다 약간 두꺼운 책 수준입니다. ‘The old man and the sea’ 딱 한 작품만 들어가 있습니다. 문단만 나눠져 있고 챕터가 따로 나뉘지 않고 쭉 서술되는 형태라서 끊어 읽기는 어렵습니다. 

저같은 경우 읽다 말다 하면서 열흘에 걸쳐서 읽었는데, 그렇게 읽다 보면 저절로 읽다가 만 부분 바로 이어서 읽게 안 되고 자꾸 앞으로 더 넘겨 가면서 읽게 됩니다. 뭔가 연결이 안 돼서도 그렇고, 문장 하나하나가 읽다 보면 앞에서 읽었던 문장을 다시 곱씹어 보게 만드는 이상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단어가 은근 어려웠습니다. 평소에 영어로 소설 읽으면서 본 단어와는 좀 다른 단어들이 종종 나왔던 걸로 기억납니다. 그런데 그게 문체가 좀 남달라 보인달까 뭔가 운치가 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챕터가 끊기지 않는 것도 그렇고, 간혹 보이는 단어의 난이도도 그렇고 초급용 도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중고급이랄 정도로 과하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저는 열흘에 걸쳐서 나눠서 읽었지만, 한 자리에서 쓱 읽고 나중에 들고 다니면서 중요했던 문장들은 한 문장, 한 문장 다시 뜯어보면 좋을 것 같이 뭔가 여운이 많이 남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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