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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fiction)

[서평]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 by Ted Chiang

by 글대장장이 서야 2024. 3. 3.

총평

솔직히 말해서, 세상에 이런 글을 쓰는 이런 작가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원서 읽기 카페에서 같이 북클럽으로 읽자고 하신 분이 없었다면, 정녕 평생 모르고 살았을 겁니다. 그런데 저만 몰랐지 이 작가 굉장히 유명한 분이었던 겁니다. 하여튼, 이 책을 읽게 돼서 나름 가문의 영광입니다.

그렇지만, 읽으면서 좀 힘들었던 책이기도 합니다. 너무 어려워서요. 결과적으로 읽으면서, 이 책을 추천해 주신 분과 작가가 모두 원망스러웠던 책으로 남았습니다. 저는 읽을 때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데, 자꾸 아무 생각없이 읽으려는 저에게 작가는 자꾸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의문을 갖게 합니다. 그 의문에 대해서 대답도 안 해 줄 거면서 말입니다.

이 책은 하나의 쭉 이어진 이야기가 있는 장편소설이 아닌 단편 내지는 중편 소설들로 묶여 있는 소설집입니다. 8개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습니다. 같은 작가가 쓰면 작품의 배경 내지는 색깔이 비슷해서 읽으면서 편할 수도 있는데, 이 책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작품마다 뭔가 좀 달라서 읽을 때마다 다시 새롭게 적응해야 해서 더 힘들었습니다.

단어도 그다지 쉽게 쓰는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작가, Ted Chiang(테드 창)의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라는 책이 어떤 책인가 간단하게 말하자면 SF입니다. 약간 환타지 같기도 합니다. 뭐, SF랑 환타지는 서로 통하니까요. 그런데 SF 하면 당대 첨단 과학에 상상력을 더한 이야기를 꾸려 나가는 게 일반적이지 않습니까!

원서 표지입니다. 판형에 따라 다양한 표지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게 다릅니다. 시작부터 고대의 과학 지식을 가지고 SF를 그려나가는 형식입니다. 그래서 소재 자체가 굉장히 독특해지는 효과를 주었습니다. 아! 단편집이라서 이 한 마디로 이 책에 있는 모든 작품을 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단편 하나 하나 마다 색깔이 조금씩 다르니까요.

절대 자기복제하는 작품들이 아닌 겁니다. 머리 식힐 겸 읽을 거 찾으시는 분들에게는 절대 비추입니다. 물론, 어려운 책이라서 초급이신 분들 어지간하면 도전하지 마세요. 생각하고 고민하고 궁금해 하고 의아해 하고 머릿속 복잡해져서 자꾸 머리를 쓰게 하는, 이런 골치 아픈 책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이 작가, 독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가만 있는 꼴을 못 보는 작가 같습니다.

책 분량

책 두께는 281쪽으로 일반적인 소설 두께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가지고 다니기에는 약간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많이 두껍지 않은 책인데, 8개의 단편이 들어가 있는 단편집입니다.

읽는 숨 짧은 분들이 읽기에 한 편이 쉽거나 짧게 느껴지지 않아서, 단편 하나씩 읽으실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끊어 읽을 수 있게 단락이 좀 나뉘었던 걸로 기억나지만, 저같은 경우 끊어 읽었더니 앞부분 기억 안 나서 다시 앞부분도 읽으면서 봤습니다.

한글 번역본 표지입니다.

2002년 7월 5일에 처음 출판된 책이라고 합니다. 굿리즈(Goodreads : 세계 최대 서평 사이트)에 따르면 상을 탔거나, 최종심까지 올라간 경우가 한 바닥입니다. 이런 만큼 한글 번역본도 이미 나와 있고 품절 나지 않고 아직도 잘 팔리고 있습니다. 영어 원서도, 한글책도 이미 읽으신 분들의 평이 좋습니다.

그래서인지 영화화 되기도 했는데요. 책 내용 전체가 영화화 된 건 아니고, 책에 실린 8개의 작품 중 하나만 영화화 됐습니다. 책의 제목이 된 t셈인 단편인 ‘Stories of your life’가 ‘컨텍트’라는 한글 제목으로 영화화 됐다고 합니다.

각 단편에 대한 짤막한 소개 글 적어봤는데,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아래에 따로 정리하니, 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아래 부분은 읽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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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별 리뷰

영화 포스터입니다.

Tower of Babylon과 Seventy two letters

과거의 과학지식으로 쓰여진 SF입니다. 차라리 100년도 더 전에 씌여진 H.G Wells의 작품들이 더 현대적으로 느껴집니다. 작품 속의 과학 지식에 한해서는요. 하지만, 고대의 과학지식의 한계 안에서 엄청나게 정밀한 묘사들과 상황설정들을 합니다. 그리고 작가의 상상력으로 변경을 시킵니다.

바빌론의 탑을 단순하게 신만큼 잘났다고 하는 인간들이 만들다가, 신의 노여움을 사서, 언어가 서로 통하지 않게 갈라놓아서 완성하지 못하고 끝난 탑이다 이것만 제가 배운 겁니다. 그런 저에게 작가는 다른 이야기를 제시합니다.

신을 경외하는 인간들이 신이 계신 곳이 어떤가 그저 과학적인 궁금증으로 열심히 짓던 탑이고, 층층마다 사는 사람들이 먹고 살려고 꾸민 채마밭이 있는 곳이라는 겁니다. 굉장히 색다르고 진기한 접근입니다. 그리고 끝에 완전 반전이 있습니다.

Seventy-two letters

명명하는 것만으로 진흙으로 빚은 인형이 움직입니다. 개인적으로 뭔가 굉장히 비과학적으로 느껴졌고, 정자로 난자로 생식을 한다는 이야기며 단순한 생물들은 그냥 지저분한 데서 생겨났다는 발상의 경우 반감이 들었습니다. 과거의 과학지식의 틀 안에서 충실하게 만들어낸 이야기지만 전 그랬습니다.

뭔가 과학이라기보다는 명명법으로 움직이게 하고 발생하는 것이 시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나, 김소월의 ‘초혼’이요. 그래서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막판에 자객에 주인공인 로버트를 잡으러 온 자객에 대항하는 부분에 오니, 나름 굉장히 스펙타클하고 박진감이 넘쳤습니다.

Understand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과,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굉장히 이 작품이 낯설기도 했고, 왜 각자의 길을 가게 서로 놔두지 못하고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그러한 대결 구도가 있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Stories of Your life

과거와 현재가 마구 뒤섞여 버린 것 같은 게 좀 이해가 안 돼서 약간 헤맸습니다. 이 작품을 다 읽고 다시 재독을 해서 이해를 했습니다.  재독을 할 때도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면서 좀 더 발췌해서 읽어야 이해가 갔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이해가 가고, 먹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이해하는 외계인의 방식이 약간 한문을 쓰는 느낌과 동양적인 느낌도 동시에 드는 게, 작가가 중국계여서 그런가 싶기도 했습니다. 내가 낳은 아이가 25살에 요절할 걸 알면서도 낳고 안 낳고는 변할 것이 없다는 건가 싶습니다. 언젠가 동네 어르신에게 들은 말이 생각났습니다. 
“자식은 어릴 때 한 번씩 웃어준 거, 그거로 효도 다 한 거야.”

Division by zero

같은 책 안에 있는 Understand나 Metahuman하고 소재가 겹치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지만 접근 방식은 또 다릅니다. 수학의 많은 것들이 증명이 돼서, 더 이상 수학에서 증명할 것이 1=2라는 식의 것밖에 없다니, 굉장히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습니다. 수학에 인생 다 걸었다가 인생무상으로 무너지는 Renee라는 주인공에 공감도 들고, 그렇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서 살아야지 싶었습니다.

Metahuman

고급 두뇌랄 수 있는 아주 높고 고매하신 학자층과 일반인들 사이에는 서로 이해 불가능한 상태가 되는 것을 그린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긴, 이 책을 북클럽으로 읽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과와 이과 사이에도 서로 이해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었는데, 그게 이 책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The hell is absence of god

기독교에 대해서 냉소적으로 그려놓은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재니스라는 여자는 축복받고, 그 축복이 저주 같아서 천국의 빛을 쫓아서 갑니다. 그러나 닉은 신에게 자신을 다 바치지 못해서 저주 받은 것 같습니다. 결국 닉은 신을 사랑하면서도 신이 존재하지 않는 지옥에 살게 되는 저주를 받을 것 같습니다.

아내와도 합치지 못하고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이 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는 지옥이 지옥이 아닌 걸까요? 지옥에 떨어지는 순간, 갑자기 신을 사랑해야 할 이유를 알게 돼서, 그곳이 지옥이 된 건 아닐까요? 때로는 지옥의 불구덩이보다 마음의 불구덩이가 더한 곳이 지옥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Liking What You See : A Documentary

등장인물 많아서 헷갈려서 헤맸던 작품입니다.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담아낸 작품이었습니다. 미에 대한 감각을 아예 못 느끼게 해서, 외모에 대한 편견을 없앤다는 발상 자체가 기발했습니다. 그것을 껐다 켰다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에 대한 토론들, 사람들마다 다른 견해들 모두 재미났습니다. 뇌를 이리 저리 조종하고 특정 부분을 켰다가 껐다가 할 수 있다면, 위정자들이 그것들을 조정하고 사람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쓰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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